[이대근 칼럼]1인 통치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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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은 날개 없이 추락하는 지지율을 되돌리려 몇가지 조치를 했다. 중도 실용을 하느라 왼쪽을 챙기지 않아서 그런가 하고 진보진영 청년을 입각 명단에 넣었다. 당내 분열 때문인가 해서 당대표 경선 후 전현직 당대표를 불러 화해를 시도했다. 부동산 세금 인상이 원인인가 싶어 올렸던 세금의 일부를 도로 내렸다. 국정 변화의 인상을 주면 될까 싶어 중폭 개각을 했다. 지지율이 오르기는커녕 더 주저앉았다.
부동산 세제, 주식 문제가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개별 정책에 대한 실망만으로는 이런 규모의 지지층 이탈을 설명할 수 없다. 중도 실용을 해서, 진보진영을 챙기지 않아서 그런 것도 아니다. 지난 15개월간 무엇이 쌓였는지를 봐야 한다.
중도는 고정된 집단이 아니라, 쟁점과 상황 따라 잘잘못을 따져 판단하는 유동적 유권자층이다. 중도층을 의식해 국정운영을 했다면 지지를 얻었어야지 잃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이재명 정부에 대한 평가는 중도층에서도 매우 낮다. 중도는 중도를 표방하는지가 아니라, 국정운영을 잘하는지를 본다. 이재명 정부에 닥친 위기는 중도로 옮겨서 생긴 것이 아니다. 그는 중도로 간 적도 없다. 여러 측면에서 그는 극단으로 갔다.
인사가 대표적이다. 그는 취임 초부터 쿠데타를 지지하고 윤석열 탄핵을 반대하고 5·18을 모욕한 인사 여럿을 요직에 기용했다. 그의 말도 거칠다. 상대 진영에 대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자신을 비판하면 지지층에게도 가차 없다.
지지층이 그토록 싫어하는 줄 알면서도 그는 줄기차게 검찰 특수통을 고위직에 임명했다. 이번에도 지지층이 선호하지 않는 검찰 출신 인사를 중대범죄수사청장으로 지명한 것에 대한 불만이 표출되자 ‘과격한 선동’이라고 공격했다.
그의 공격적 언어는 최대주의적 발언 습관과 짝을 이룬다. 그때그때 부상하는 쟁점을 단순화해 절대적이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이것이 최선이라고 했다가 곧 앞의 최선과 충돌하는 다른 최선을 내놓는다. 육사 출신이 세 번의 쿠데타를 일으키고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고 격렬히 비난하고는 한 달도 안 돼 육사 출신에 국방장관이란 중요한 책임을 맡겼다. 마차는 말이 이끌지만, 국정은 말이 이끌지 않는다.
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새로운 조치나 정책을 제시할 때 그와 반대되는 정책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한다. 주택 공급 절벽이라고 했다가 주택가격이 폭락하고 있으니 대비책을 세우라고 지시한 것, 정치적 손해를 보더라도 어쩔 수 없다며 보유세 인상을 예고했다가 정치적 손해를 보자 인하 결정을 한 것이 모두 한 달 사이 일이다.
말과 말, 행동과 행동, 정책과 정책은 서로 지지해주지 않는다. 앞의 말이 뒤의 말을 쓰러뜨리고, 어제의 정책이 오늘의 정책을 밀쳐낸다. 그것들로는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 수 없다. 이런 국정은 중도 실용과 아무 상관 없다.
그는 최종 결정권자가 아니다. 유일한 결정권자다. 그는 시작과 끝의 모든 단계에서 홀로 정하기에 이견에 부딪힐 일이 없고, 이견이 없기에 자기 조정이 없고, 자기 조정이 없기에 자의적이며, 자의적이기에 판단과 결정을 수시로 바꾸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다. 1인 통치다.
1인 통치는 지지율 추락의 원인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지지층 분열의 씨앗이기도 하다. 1인 통치는 이재명 정부의 아무리 사소한 문제라도 그에게 책임을 물을 정당한 이유를 제공한다. 지지층 내 불만은 그 지점에서 명분을 얻고, 일부는 그 불만을 당내 권력 갈등의 자산으로 삼는다. 지지층 분열은 1인 통치의 가장 뚜렷하고 파괴적인 결과다.
1인 통치는 예측할 수 없기에 불길하다. 연임개헌과 공소취소라는 쌍둥이 괴물을 낳은 것도 1인 통치다. 중도층만 이 괴물에 불편해하는 게 아니다. 지지층도 자신들이 선택한 지도자가 이런 괴물을 키우는 걸 똑똑히 지켜봤다. 민주적 헌정질서의 수호자라는 자부심을 가진 이들이다. 이재명을 계속 신뢰하리라 기대할 수 없다. 구조적 다수라는 신기루를 쫒을 때가 아니다. 지지층 불신 위에서는 어떤 국정도 성공할 수 없다.
이재명 정부에서는 이재명만 있다. 이런 정부에서 개각이 대폭이든 중폭이든 아무 의미 없다. 이재명 정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오직 이재명만이 답할 수 있는 질문이다.
부동산 세제, 주식 문제가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개별 정책에 대한 실망만으로는 이런 규모의 지지층 이탈을 설명할 수 없다. 중도 실용을 해서, 진보진영을 챙기지 않아서 그런 것도 아니다. 지난 15개월간 무엇이 쌓였는지를 봐야 한다.
중도는 고정된 집단이 아니라, 쟁점과 상황 따라 잘잘못을 따져 판단하는 유동적 유권자층이다. 중도층을 의식해 국정운영을 했다면 지지를 얻었어야지 잃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이재명 정부에 대한 평가는 중도층에서도 매우 낮다. 중도는 중도를 표방하는지가 아니라, 국정운영을 잘하는지를 본다. 이재명 정부에 닥친 위기는 중도로 옮겨서 생긴 것이 아니다. 그는 중도로 간 적도 없다. 여러 측면에서 그는 극단으로 갔다.
인사가 대표적이다. 그는 취임 초부터 쿠데타를 지지하고 윤석열 탄핵을 반대하고 5·18을 모욕한 인사 여럿을 요직에 기용했다. 그의 말도 거칠다. 상대 진영에 대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자신을 비판하면 지지층에게도 가차 없다.
지지층이 그토록 싫어하는 줄 알면서도 그는 줄기차게 검찰 특수통을 고위직에 임명했다. 이번에도 지지층이 선호하지 않는 검찰 출신 인사를 중대범죄수사청장으로 지명한 것에 대한 불만이 표출되자 ‘과격한 선동’이라고 공격했다.
그의 공격적 언어는 최대주의적 발언 습관과 짝을 이룬다. 그때그때 부상하는 쟁점을 단순화해 절대적이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이것이 최선이라고 했다가 곧 앞의 최선과 충돌하는 다른 최선을 내놓는다. 육사 출신이 세 번의 쿠데타를 일으키고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고 격렬히 비난하고는 한 달도 안 돼 육사 출신에 국방장관이란 중요한 책임을 맡겼다. 마차는 말이 이끌지만, 국정은 말이 이끌지 않는다.
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새로운 조치나 정책을 제시할 때 그와 반대되는 정책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한다. 주택 공급 절벽이라고 했다가 주택가격이 폭락하고 있으니 대비책을 세우라고 지시한 것, 정치적 손해를 보더라도 어쩔 수 없다며 보유세 인상을 예고했다가 정치적 손해를 보자 인하 결정을 한 것이 모두 한 달 사이 일이다.
말과 말, 행동과 행동, 정책과 정책은 서로 지지해주지 않는다. 앞의 말이 뒤의 말을 쓰러뜨리고, 어제의 정책이 오늘의 정책을 밀쳐낸다. 그것들로는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 수 없다. 이런 국정은 중도 실용과 아무 상관 없다.
그는 최종 결정권자가 아니다. 유일한 결정권자다. 그는 시작과 끝의 모든 단계에서 홀로 정하기에 이견에 부딪힐 일이 없고, 이견이 없기에 자기 조정이 없고, 자기 조정이 없기에 자의적이며, 자의적이기에 판단과 결정을 수시로 바꾸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다. 1인 통치다.
1인 통치는 지지율 추락의 원인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지지층 분열의 씨앗이기도 하다. 1인 통치는 이재명 정부의 아무리 사소한 문제라도 그에게 책임을 물을 정당한 이유를 제공한다. 지지층 내 불만은 그 지점에서 명분을 얻고, 일부는 그 불만을 당내 권력 갈등의 자산으로 삼는다. 지지층 분열은 1인 통치의 가장 뚜렷하고 파괴적인 결과다.
1인 통치는 예측할 수 없기에 불길하다. 연임개헌과 공소취소라는 쌍둥이 괴물을 낳은 것도 1인 통치다. 중도층만 이 괴물에 불편해하는 게 아니다. 지지층도 자신들이 선택한 지도자가 이런 괴물을 키우는 걸 똑똑히 지켜봤다. 민주적 헌정질서의 수호자라는 자부심을 가진 이들이다. 이재명을 계속 신뢰하리라 기대할 수 없다. 구조적 다수라는 신기루를 쫒을 때가 아니다. 지지층 불신 위에서는 어떤 국정도 성공할 수 없다.
이재명 정부에서는 이재명만 있다. 이런 정부에서 개각이 대폭이든 중폭이든 아무 의미 없다. 이재명 정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오직 이재명만이 답할 수 있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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