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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틀담 화재 사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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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량 댓글 0건 조회 145회 작성일 19-09-25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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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틀담 화재 사건으로
장미창 이야기들을 많이 해서
옛날 고리짝에 썼던 글을
소환해보았다.
2003년 글
...
고딕 교회에 들어서는 사람은 누구나 빛의 세례를 피할 도리가 없다. 말씀이 빛이 되는 기적을 목격했던 요한의 밝은 눈이 우리의 더딘 걸음을 이끄는 동안, 높은 곳에서 쏟아지는 빛은 색유리의 옷을 걸쳐 입고 우리네 알몸의 영혼을 폭포수처럼 적신다. 색 유리창 가운데 가장 밝은 빛을 뿜어내는 것은 아무래도 장미창이다.

장미는 지혜와 성모 상징

고딕 교회의 둥근 창을 장미창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장미가 지혜의 꽃이며 거룩하신 성모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성 베르나르도도 투명한 유리를 성모 마리아의 상징으로 읽은 적이 있었다.

『태양의 빛살이 창문의 유리를 다치는 법 없이 지날 때 / 초월적 빛살의 부드러움은 단단한 유리의 질료를 넘어서 범람하나 / 빛살이 들고나면서 결코 유리를 깨거나 조각 내지 않는 것처럼 / 주님의 말씀, 주님의 빛살이 처녀의 집과 닫힌 품을 드나들 때도 그러하였다』

고딕 교회의 장미창은 밝고 크기도 하지만, 어느 한 군데 모난 곳 없이 둥근 모양이다. 이전에도 둥근 창은 있었다. 그러나 고딕 시대에 이르러 원형창이 큼직해지고 내부에 바퀴살이 붙으면서 천상의 문 또는 태양 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실제로 대부분 고딕 교회의 장미창틀은 바깥쪽에 황금을 입히거나 누런 색을 칠했다고 하니, 마치 태곳적부터 작렬하는 태양의 수레바퀴가 푸른 하늘을 바삐 가로지르는 광경을 방불케 했을 것이다. 빛 덩어리는 신성의 둥근 후광을 뜻하기도 한다.

바퀴→태양→그리스도 상징

시의 언어로 읽자면 바퀴의 형상은 태양을, 태양은 다시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리스도를 태양에 비유했던 세비야의 이시도로, 그리고 그의 신학을 12세기에 부활시킨 생 빅토르의 위고가 고딕식 교회의 건축양식이 탄생한 시점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장미창 속에는 반드시 별 모양의 바퀴살이 들어 있다. 자세히 보면 크고 작은 바퀴들이 안팎을 서로 감싸고 있다. 이런 바퀴의 형상에도 예언이 깃들어 있다. 가령 예언자 에제키엘은 네 가지 짐승을 환영으로 보면서 바퀴의 생김새를 설명한다(1, 16~17).

『그 바퀴들은 넷 다 같은 모양으로 감람석처럼 빛났고 / 바퀴 속에 또 바퀴가 들어 있어서 돌아가듯 되어 있었는데』

샤르트르의 노트르담 교회의 장미창도 수레바퀴처럼 둥글다. 북쪽 장미창의 한 복판, 그러니까 바퀴의 중심축에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앉아 있고, 천사와 왕들, 그리고 예언자들이 돌아가는 바퀴의 넓적한 판과 테두리를 차지한다. 수레바퀴가 으레 그런 것처럼 바퀴가 돌아가는 동안 바퀴 축은 움직이지 않는다.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서 삼라만상을 굴리는 부동의 동인, 곧 제 1원인인 셈이다. 장미창의 구성에서 중심과 주변의 위계적 질서는 이처럼 신과 세상, 창조와 피조, 하나와 여럿 사이의 일체화된 관계를 드러낸다. 이 관계는 바퀴와 바퀴축처럼 튼튼하고 조화롭다.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우니베르숨, uni-versum)를 풀어서 읽으면 「하나를 향한다」가 된다. 쿠사의 추기경 니콜라우스 쿠사누스는 원의 중심점을 그리스도로 보고 그로부터 모든 지식이 비롯된다고 말한다. 인간이 작은 우주라면 장미창은 큰 우주의 중심에 서 있는 하나의 진리로 이어지는 깨침의 문이라는 뜻이다.

무한한 사랑의 궁극적 표상

장미창의 열 두 갈래 바퀴살은 원의 완전한 형태에 잘 어울린다. 열 두 겹 우주, 시간의 열 두 구획, 예수를 따랐던 열 두 제자, 밤하늘 12 궁도, 이스라엘의 12 지파, 새 예루살렘을 떠받치는 열 두 주춧돌이 모두 장미창의 비밀스러운 정체를 말해준다.

장미창이 등장하기 전에도 둥근 창이 있었다. 모양새가 눈동자를 닮았다고 해서 오쿨루스라고 불렀다고 한다. 인간의 육신에서 눈동자는 영혼의 빛을 담는 밝은 창문이라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눈동자는 또 사랑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눈빛은 사랑을 전달하고 나누는 정직한 수레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시인 단테는 천국의 마지막 하늘에서 사랑하는 연인 베아트리체가 펼쳐 보인 장미꽃처럼 둥근 빛의 형태를 응시한다. 시인의 눈길은 「원의 면적을 구하려는 기하학자처럼 집요했으나 측정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사랑의 크기와 무게를 측정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천국편 33장 133~135).

이로써 장미창은 무한한 사랑의 궁극적 표상이 된다. 단테는 신학의 오래 묵은 술 부대를 헹궈내고 여기에 시의 달콤한 향기를 불어넣었다. 천국편 순례의 마지막 구절이다.

『나의 소망과 의지를 / 고르게 회전하는 바퀴처럼 굴리는 것은 / 바로 태양과 뭇 별조차 움직이는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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