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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몰랐던 4000m 봉우리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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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bkbbk 댓글 0건 조회 64회 작성일 19-09-21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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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아무도 몰랐던 4000m 봉우리의 전설
알프스산맥은 4000m 봉우리만 58개
근대 등산의 발원지이자 인간 한계의 도전
등정에 현상금 걸리기도
1930~40년엔 ‘북벽시대’ 열려…수많은 산악인 도전
샤모니(1037m)에서 브레방전망대(2526m)까지 연결된 케이블카가 몽블랑 정상(4808m)이 보이는 곳을 지나고 있다. 사진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제공
샤모니(1037m)에서 브레방전망대(2526m)까지 연결된 케이블카가 몽블랑 정상(4808m)이 보이는 곳을 지나고 있다. 사진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제공

유럽 대륙 중심부를 관통하며 뻗어 있는 알프스산맥은 4000m급 봉우리만 58개인 거대한 장벽이다. 수백만년 전 아프리카와 유라시아의 대륙판이 충돌해 솟아오른 알프스·히말라야 조산대의 한 부분이다. 알프스는 서부·중부·동부로 나뉘는데, 티엠비(투르 뒤 몽블랑·Tour du Mont Blanc) 코스가 있는 서부 알프스는 몽블랑(4808m) 등 14개의 4000m급 봉우리와 40개 이상의 빙하가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국경에 걸쳐 있다. 중부 알프스는 주로 스위스 지역으로 체어마트를 중심으로 한 마터호른(4478m), 바이스호른(4505m), 몬테로사 산군과 베르너 알프스의 융프라우(4158m), 아이거(3970m) 등 고봉들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동부 알프스는 주로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북부에 걸쳐 있으며, 난도 높은 대암벽이어서 유럽의 요세미티라 불리는 돌로미테 산군이 유명하다.
몽블랑 오른편 능선에 있는 메종비에유 산장(1956m)은 이탈리아 쿠르마예르(1224m)에서 케이블카로도 올라올 수 있다. 사진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제공
몽블랑 오른편 능선에 있는 메종비에유 산장(1956m)은 이탈리아 쿠르마예르(1224m)에서 케이블카로도 올라올 수 있다. 사진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제공
알프스는 근대 등산의 발원지이다. 등산을 뜻하는 알피니즘(alpinism)도 여기서 연유했다. 산업혁명을 거쳐 시민사회가 태동하던 유럽에 고산 등정 열풍이 분 것은 신화의 세계에서 벗어나 인간 영역의 한계를 넓혀가려는 시대 변화의 징표다.
당시만 해도 몽블랑 같은 높은 산봉우리는 경외의 대상이 아니었다. 알프스 근방에 사는 주민들은 수천년간 산꼭대기에는 악마나 용이 산다고 믿었다. 사람을 상하게 하는 눈사태나 낙빙은 그들의 소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네바의 과학자 오라스 베네딕트 드 소쉬르는 샤모니 인근 브레방(2526m)에 올라 맞은편에 보이는 몽블랑의 장엄함에 넋을 읽고 등정을 결심한다. 그는 몽블랑 첫 등정에 현상금을 걸었는데 이때가 1760년이었다. 하지만 20년이 넘도록 아무런 진척이 없다가 프랑스혁명 3년 전인 1786년 8월8일에 첫 등정에 성공한다. 오지였던 샤모니의 의사 미셸 파카르와 가이드로 고용된 수정 채취업자 자크 발마가 변변한 장비도 없이 목숨을 내건 사투 끝에 정상에 선 것이다. 몽블랑 등정 뒤 발마는 혼자 영웅이 되려는 의도였는지 파카르는 정상에 오르지도 못했다는 거짓말을 했다. 이후 100년이 지나서야 파카르도 당당히 정상을 밟았음이 확인돼 명예가 회복된다.
티엠비의 베이스캠프 격인 샤모니 중심가엔 몽블랑 등정 시대를 연 소쉬르와 발마(오른쪽)의 동상이 있다. 발마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이 몽블랑 정상이다. 사진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제공
티엠비의 베이스캠프 격인 샤모니 중심가엔 몽블랑 등정 시대를 연 소쉬르와 발마(오른쪽)의 동상이 있다. 발마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이 몽블랑 정상이다. 사진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제공
몽블랑 첫 등정이 이뤄진 뒤 알프스의 주요 봉우리들이 속속 인간의 발아래 놓인다. 예각 삼각형의 날카로운 바윗덩어리로 ‘인간이 결코 오를 수 없는 산’으로 여겨지던 마터호른(4478m)을 1865년 에드워드 휨퍼가 오른 뒤, 4000m 이상 봉우리들은 모두 사람의 발길이 닿았다. 이후 등정은 가이드 없는 단독 등정, 남이 가지 않은 어려운 길을 택하는 머머리즘으로 전개됐고, 1930~40년대에는 난공불락의 수직벽을 공략하는 ‘북벽(north face) 시대’로 이어진다. 최후까지 인간을 거부하며 남아 있던 알프스 북벽은 3곳이었는데 마터호른, 아이거, 그랑드조라스 북벽이 그것이었다. 1931년 마터호른 북벽이 독일의 슈미트 형제에 의해 그 모습이 세상에 처음 알려졌고, ‘산악인의 공동묘지’라 불리던 1500m 직벽, 아이거 북벽이 1938년 7월 하인리히 하러 등 독일·오스트리아 합동원정대에 길을 열어준다. 같은 해 8월에는 그랑드조라스 북벽이 리카르도 카신 등 이탈리아 원정대에 의해 그 자태를 드러내게 된다. 알프스 주요 봉우리와 암벽이 차례로 세상에 알려지자, 등반의 경쟁 무대는 알프스를 넘어 히말라야로 옮겨갔고, 각 대륙의 최고봉 등으로 옮겨간다.
알프스를 무대로 200년 이상 펼쳐진 등반 경쟁에서 수많은 도전자가 산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기라성 같은 등반사의 거인도 탄생했다. 티엠비의 산장들은 그런 유명 산악인을 기념해서 지어진 곳이 많다. 한 예로 그랑드조라스봉을 바라보는 곳에 세워진 보나티산장은 이탈리아의 세계적 산악인 발터 보나티(1930~2011)의 동료들이 그를 기려 세운 것이다. 보나티는 거벽 단독 등반의 일인자답게 1965년 마터호른 첫 등정 100주년을 기념해 ‘북벽·동계·직등·단독’의 극한등반을 해치워 세계를 놀라게 했다.

샤모니(프랑스)/글·사진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910058.html?_fr=mt3#csidx09459f3bec78df5ba47d0603ad29b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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